(사진=문학동네)
어떨 땐 모르는 사람에게 술술 이야기가 더 잘 나올 때가 있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은 타는 속내를 거쳐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귀로 흘러들어간다. 그것은 기이한 경험이다. 오히려 안심되고, 더 솔직한 이야기들이 터져나온다.
지금까지 많은 문학가들이 사람의 이같은 면모를 포착해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왔다. 메이브 빈치도 네 여행자가 인연과 우연으로 얽히면서 서로의 삶에 엮여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비와 별이 내리는 밤'이 국내에 소개된다.
지난해 그의 유작인 '그 겨울의 일주일'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이어서 소개되는 소설은 '비와 별이 내리는 밤'으로 2004년 발표된 소설이다.
그리스의 작은 마을 아기아안나. 언덕 위에 위치한 타베르나(그리스의 식당)에 여행자 네 사람이 찾아온다. 아일랜드에서 온 간호사 피오나, 캘리포니아 출신 영문학 교수 토머스, 독일의 저널리스트 엘자, 그리고 수줍은 영국인 청년 데이비드. 이들이 타베르나에 도착했을 때 언덕 아래 항구에서 유람선 화재 사고가 발생하고, 타베르나의 주인 안드레아스와 함께 모두 참담하고 슬픈 마음으로 그 비극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각자의 사연과 고민을 품고 고향에서 도망치듯 여행을 떠나 어쩌다 한자리에 모였을 뿐이다. 그렇게 이들은 그날 어둠이 내리고 별이 하나둘 떠오를 때까지 서로의 곁을 지키면서 마치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각자의 고민과 사연을 털어놓으며 급격하게 가까워진 네 사람은 그 후 아기아안나에 계속 머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타베르나의 주인 안드레아스와 지혜로운 마을 주민 보니와도 점차 관계를 쌓아나가게 된다.
작가는 누구나 할 법한 고민들을 품은 채 떠나온 네 여행자가 각자가 두고 떠나온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며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모습을 그린다. 네 여행자는 우리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자신만의 고민에 빠져 애정 어린 조언을 무시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며 고집을 부리기도 하지만 이들의 삶 전체를 보듬는 저자의 살갑고 다정한 시선이 우리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