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한축구협회
(사진=대한축구협회)

한창 축구 인기가 최정점에 다다랐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잠깐 주목받았던 이가 있다. 당시에도 대머리 아저씨, 혹은 선수들을 아버지처럼 챙긴다는 정도로 알려졌던 박항서 감독이다. 그러나 17년의 세월이 지나 그에 대한 평가는 180도 달라졌다. 각도상으로는 180도가 완연한 반대를 표시하는 수치이긴 하지만 체감상으로는 540도쯤 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베트남의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베트남인의 국민감독이 됐고, 베트남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들조차 호의 가득한 환대를 받게 만든 주역, 박항서 감독은 이 시대의 떠오르는 리더로 평가받는다.

박항서 감독이 영웅으로 떠오른 지난 12월, 그의 지인들은 언론사들과 인터뷰에서 앞다퉈 그의 어린 시절을 말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박항서 감독이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여장부란 소리를 듣던 그의 어머니는 억척스러운 생활력과 함께 정 많은 인물이었다고. 주위에 사람이 많고 이들을 이끄는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기질이라 입을 모으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 인정많은 여장부의 아들, 스물아홉에 사람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다

박항서 감독은 고교시절에 접어들어서야 축구 선수를 인생길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 당시에도 남들보다 늦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한양대와 실업 제일은행, 프로 럭키금성(FC서울의 전신)에서 두각을 보였다. 그러나 미드필더 영역에서의 경쟁자는 너무 많았고 그는 국가대표 1진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981년 한일정기전에서 선발이 아닌 교체로 투입돼 73분 뛴 것이 전부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명 축구 선수들의 화려한 이력을 되짚어볼 때 그의 현역 생활은 아쉬운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더욱이 박항서 감독은 은퇴도 빨랐다. 남들은 한창 뛸 때인 스물 아홉에 은퇴를 결정한 그는 트레이너의 길을 선택했다. 성실했고, 감독과 선수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로서 남다른 두각을 나타낸 그는 영원한 트레이너 혹은 영원한 코치로만 불릴 줄 알았다. 우리가 그를 TV속에서 눈여겨 보기 시작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도 그의 위치는 코치였다.

사진=SBS스포츠 방송화면
사진=SBS스포츠 방송화면

이 지점에서 배울 점은 내려놓는 리더십이다. 유독 학연 지연에 얽매이는 일이 많은 스포츠계에서 박항서 감독은 남다른 인물이었다. 학연, 지연에 연연하지 않았던 그는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을 반복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자리만 챙기고 욕심에만 몰두했더라면 자신의 당시 위치는 더 나아졌을지 모르겠지만 박항서 감독의 결정에는 늘 팀과 선수라는 대의가 먼저였던 셈이다. 또 한가지, 박항서 감독의 장점을 꼽으라면 끈기다. 그는 어려운 순간순간에도 축구인생을 놓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건만 박항서 감독에게 이동은 있어도 영원한 떠남은 없었다. 하물며 부산 대표팀에서는 후배 감독 밑에서 선배인 그가 코치 생활을 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자라지 않았고,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인생은 지난해에 활짝 꽃을 피운다. 피파 랭킹 102위의 베트남 축구팀을 아시안게임 4강에 올려놓으면서다. 오죽하면 박항서 매직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일까. 이후 그의 인생이 재조명됐고, 베트남에서 발휘한 리더십은 수없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 '결국 사람'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은 진심과 신뢰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말하는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 첫째는 진심의 따뜻함이다. 베트남 선수들과 감독을 잇던 통역사는 박항서 감독이 끊임없이 선수들에 감동을 주며 마음을 움직이는 지도자라 평했다. 박항서 감독 스스로도 그랬다. 그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우리 선수들과 같이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선수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드러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모 감독의 갑질, 선수가 아파도 채찍질하며 모욕감을 주는 방식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여느 감독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가 하면 업계에서는 박항서 감독이 먼저 선수들에게 보인 신뢰가 팀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타국의 언어와 문화와 생활습관이 다른 선수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좌지우지하지 않고 믿고 기다려줌과 동시에 그 스스로가 먼저 선수들의 편견과 선입견을 깨고 선수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을 만한 감독’으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점을 무수히 많은 스포츠인들이 찬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늘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도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다. 모두의 공로”라고 하는 말 역시 대외용 빈말이 아닌 진심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박항서 감독이 솔선수범하고 먼저 마음을 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처럼 세간이 평가하는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을 살펴보면 그 본질은 결국 ‘인관관계’에 있다. 누구나 자신이 이끄는 팀의 선수들을 믿는다고 말한다. 팀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를 일관적으로 지키며 사람들의 신망을 얻은 이는 결코 많지 않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 도구화, 물화하지 않은 그의 진심이 결국 ‘신화’라는 ‘박항서 매직’을 이뤄낸 셈이다. 한가지 더, 그의 지인들은 그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부를 취하지 않았다며 박수를 보낸다. 베트남에서도 우승 포상금, 보너스 등을 전부 기부했다고 알려진다. 어쩌면 그가 이 시대에 현현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닐까 싶다.

사진=북스타
사진=북스타

■ ‘박항서 매직: 베트남 축구의 신화!’

표지부터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사진이 배치되며 그의 성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저자는 박항서 감독이 예순이라는 나이에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옛 명언을 현실화시킨 인물이라고 말한다. 도전보다 안주, 시도보다는 안정을 추구할 나이 베트남에 뛰어들어 신화를 이뤄낸 박항서 감독의 가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은퇴를 앞둔 시점 베트남으로 향한 박항서의 행보를 시작으로 초기, 베트남 언론의 차가운 시선부터 감독의 자질론 선수들과 소통 등 고충이 많았던 과정, 그리고 박항서 리더십이 발현되기 시작한 일화들을 함께 소개한다. 더불어 박항서 감독의 인생길에서 배울 수 있는 점,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 등을 주목하고 분석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