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트렌드코리아’ 시리즈를 내놓으며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공정해질 것이라고. 그의 지론은 이렇다. 수업을 하며 팀 프로젝트와 개인 과제를 제안했더니 대다수 학생들이 개인과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개별로 움직이겠다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느 팀원은 노력하지 않고 같은 점수를 받고 어느 팀원은 죽도록 고생하고도 1등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이같은 일화를 밝히면서 지금의 젊은 세대는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 촛불을 들고 나서고, 그 사회를 바꿔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공정한 사회를 위해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람들의 진심은 그럴지 모르겠으나 현실은 아직 공정하지 못하다. 어느 장관, 어느 정치인이 화두에 오를 때 적지 않은 이들이 그들의 자식이 특권을 누렸고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닌 모양이다. 파키스탄과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부모를 둔 셰이머스 라만 칸 컬럼비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권’이란 책으로 미국 사회의 특권 대물림과 특권을 통해 쌓은 능력주의가 과연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 묻는다.

사진=후마니타스
(사진=후마니타스)

이 책의 부제는 ‘명문 사립 고교의 새로운 엘리트 만들기’다. 미국의 뉴햄프셔 주, 콩코드에 위치한 명문 사립고 세인트폴 스쿨은 오랫동안 부유층 자제들만이 다니는 배타적 영역이었다. 500명 남짓의 아이들이 2000에이커에 달하는 부지에 늘어선 1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100개 이상의 고딕 양식 건물들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는다. 이 학교의 연간 학비는 4만 달러, 학생 1인당 책정된 학교 예산은 8만 달러, 한 학생당 기부금은 100만 달러에 달한다. 저자 역시 이 학교 출신이었다는 설명. 가난한 파키스탄 이민자였지만 외과의사로 성공한 아버지 덕에 이 사립학교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지만 엘리트 친구들 사이에서 불편했고 ‘특권층들만의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졸업 후 아이비리그가 아닌 작은 리버럴아츠 컬리지를 선택한 그는 “왜 누구는 이런 학교에 들어오는 게 당연한데, 누구는 죽도록 노력해 성취해야 하는 일이 되는가? 왜 어떤 애들은 학교생활이 너무 편하고 쉬운데, 어떤 애들에겐 악전고투해야 하는 일이 될까? 왜 이런 엘리트 학교의 대다수는 여전히 부잣집 애들인가? 이들은 어떻게 기존의 특권을 그대로 수호하면서도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 자리까지 오른 ‘능력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걸까?”라는 의문에 직면한다.

저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졸업 후 9년 만에 선생이자 연구자로서 모교로 돌아가고 ‘불평등에 대한 문화연구’를 시작한다. 특권적 엘리트들이 21세기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그리고 이들 ‘신(新)엘리트’ 젊은층은 새로운 세기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탐색한 저자는 과거 자본수입이 압도적이었던 부자들과 달리 이제는 임금 소득이 압도적이 되면서 “자신들의 위치를, 그들이 가진 자본이나 물려받은 위치가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로 설명”하는 부자들이 생겨났다고 분석한다. 결국 특권층과 소시민의 차이는 더 이상 공장을 소유하느냐, 그 공장에서 일하느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고, 공정한 과정 속에서 경쟁하는 새로운 엘리트와 일반계층은 결과도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책을 통해 “오늘날의 능력주의는 비록 문화적으로 개방적이지만 여전히 사회 경제적으로 폐쇄돼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셰이머스 라만 칸 지음 | 강예은 옮김 | 후마니타스 | 420쪽 |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