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전 한 후배가 회식 자리에서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주문된 음식 대신 비닐봉지에 담아 온 음식을 먹으며 동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았다.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봉지 안에 담긴 음식은 방울토마토, 땅콩 등이었던 탓이다. 자신을 비건( 채소, 과일, 해초 따위의 식물성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이라고 소개한 후배는 이후에도 자주 집에서 싸온 자신만의 음식을 먹으며 동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들어 적지 않게 눈에 띄는 비건과 베지테리언(육식을 피하지만 일부 채식주의 단계에서는 닭고기나 가끔의 육식 허용하며 식물을 재료로 만든 음식만을 먹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의 채식주의 이유를 물어보면 “소화가 잘 안돼서” “동물 학대를 반대해서” 등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이들은 옷이나 신발, 가방 등을 살 때도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피한다.
그렇다면 육식은 왜 반대되는가.
동물 학대를 반대하는 이들은 식용으로 사육되는 동물들이 사육 과정에서 학대에 가까운 환경을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축 역시 비윤리적으로 진행되는 점을 지적하며 육식에 반대한다. 육식 소비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학대 동물의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하기 때문이다.
육식은 인류의 번식과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부족한 곡식대신 인류를 기아로부터 구한 게 바로 육식이다. 하지만 오늘 날 육식은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고 채식주의가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의 식생활을 재고해 볼 때가 되었기에 ‘육식의 종말’과 ‘채식주의자’를 소개한다.
저자 제레미 리프킨 | 출판사 시공사
■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육식 ‘육식의 종말’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체제 및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다. 그는 이 책 ‘육식의 종말’을 쓴 후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든 육식을 지양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이 책을 저술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육식을 지양하기 바란 것일까.
“수백만 명의 인간들이 곡식이 부족해 기아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선진국에서는 사료로 된 육류, 특히 쇠고기 과잉 섭취로 인해 생긴 질병으로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미국인, 유럽인, 일본인들은 곡물로 사육된 쇠고기를 탐식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풍요의 질병’, 즉 심장발작, 암, 당뇨병 등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책은 이처럼 육식이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위협하는 가에 대한 명제를 제시하는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한가, 인간임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 책은 단순한 육류 섭취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육식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환경과 생태계를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 옛날 소를 제물로 바치던 고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소와 문명사회의 함수 관계를 밝히고 선진국의 육류 소비를 위해 파괴되는 환경과 굶주리는 제3세계의 현실을 폭로한다. 또한 인간의 식단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을 통해 인류의 새로운 과제를 정할 수 있음을 육식 문화를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인류학적 전환을 의미함을 알려준다.
저자 한강 | 출판사 창비
■ 과거 치유로서의 채식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는 저자 한강을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자로 만들어 주었다. 책은 단아하고 시심 어린 문체와 밀도있는 구성력이라는 작가 특유의 개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으면서도 상처 입은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인 상상력에 결합시켜 섬뜩한 아름다움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린 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개를 죽이는 장면이 뇌리에 박혀 점점 육식을 멀리하고 스스로가 나무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영혜를 주인공으로 각 편에서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1주 ‘채식주의자’에서는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남편, 2부 ‘몽고반점’에서는 처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을 탐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사진작가인 영혜의 형부, 3부 ‘나무 불꽃’에서는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을 목격했으나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혜가 화자로 등장한다.
잔잔한 목소리지만 숨 막힐 듯 한 흡인력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상처받은 영혼의 고통과 식물적인 상상력을 결합시켜 섬뜩하지만 아름다운 미적 경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저자가 발표해온 작품에 등장했던 욕망, 식물성, 죽음, 존재론 등의 문제를 한데 집약시켜놓은 것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