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 10분의 1인 54만 명이 거주하는 강남, 그곳은 상위 10%를 이야기 하는 것일까? 조국 전 민정수석은 이른바 ‘강남 좌파’라는 별칭을 통해 부유층과 서민층을 아우르며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서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강남=부유층’이라는 인식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지만 또래 부모들은 벌써부터 ‘어느 고등학교가 좋다더라’ ‘요즘 인문계 고등학교는 예전 같지 않다. 특목고를 보내야 한다’ ‘학군을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더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더라도 유난한 부모가 되지 말자고 했던 의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새 또래 부모들의 현명한 학구열인지, 극성인지에 동화되고 마는 것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나보다’라며 자기 합리화에 빠지게 된다. 나 역시 서울 비강남권에서 학원이나 과외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고 어릴 적부터 기자를 꿈 꾼 덕분에 어느새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기자로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니 강남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불안감은 나도 모르게 의식을 지배한다. 왜 강남이 아니면 아이 교육이 뒤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 곱씹어 보니 결국 미디어가 조장한 불안감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신도시가 들어서는 곳 어디에서라도 이른바 ‘치맛바람’ 얘기는 무용담처럼 들린다. 최근에는 경기도권 어느 신도시 학부모들이 극성이라는 소문을 듣자마자 그 지역에 사는 친구는 아들의 담임선생님을 세 번이나 바꿨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지역은 맘카페에서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험담이 시작돼 결국 신문지상을 장식할 만큼 엄마들의 입방아가 극심한 곳이다. 그렇다면 그 지역, 그 사람들에 국한된 이야기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나에게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이 있다. 이렇게 적극적인 엄마들이 있는데, 일 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학교생활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이미 심심치 않게 ‘직장맘 아이들은 따돌린다더라’는 얘기를 들어온 탓이다.
그렇다면 그곳 신도시 엄마들은 왜 강남 엄마들을 닮아가는 것일까. 강남은 왜 이토록 가진 자들의 횡포가 공공연한 도시가 되었으며 동시에 다른 신도시의 롤모델이 되었을까. 그리고 또 강남권과 비강남권을 나누어 인구 10분의 9에게 자괴감을 안기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의 강남을 바라보는 시선에 앞서 이 책 ‘강남몽’을 읽어봤어야 했는지 모른다.
■ 탐욕 그리고 붕괴...그래도 강남 '강남몽’
‘강남몽’은 2010년에 출간됐지만 지금이라도 한번 쯤 읽어보고 강남이라는 지역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자 황석영은 ‘강남몽’ 집필 후 “본질적인 뿌리는 알아야지.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땅, 이 상황이 어떻게 형성된 건지는 알아야지. 그렇지 않아?”라고 말했다.
한때는 강북이 그랬다. 정부에서 강북개발제한책을 내놓을 정도로 강북은 부유한 동네였으며, 유서 깊은 학교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강북의 개발이 제한되면서 돈은 강남으로 몰리게 된다. 책은 강남 부유층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삼풍백화점 붕괴 이야기를 다루며 시작되고 끝이 난다. 박선녀는 강남 일대 부동산 부자의 첩이다.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룸싸롱 등지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강남 개발을 통해 돈을 쓸어 담고 있는 이들을 만나 투자를 배운다. 어느새 중년이 된 그녀는 명품가방과 옷, 화장품을 마음껏 사들이고 사우나에서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 땅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야말로 ‘복부인’이다. 그런 그녀가 삼풍백화점에서 쇼핑 중 백화점 붕괴로 고립된다.
박선녀의 고립과 구조 그 사이에 대한민국의 경제와 정치, 건달 세계가 망라해서 담겨 있는 책이 ‘강남몽’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등장하고, 계엄령과 범죄와의 전쟁이 이 책 한권에 담겼다. 전쟁 후 대한민국은 고도의 발전을 이루었다. 그 발전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집을 잃지만 어떤 이들은 수 없이 많은 집을 사들이면서 신흥 부자가 된다. 저자는 강남으로 쏠리는 탐욕을 삼풍백화점 붕괴로 ‘권선징악’하려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고도 25년이 훌쩍 지난 현재도 돈이 모이고 탐욕과 권력이 똬리 틀고 있는 곳이 강남이다.
10권 분량이 대하소설이 되었어도 충분했을 ‘강남몽’은 한 권에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담아내며 동시에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희로애락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 황석영이 이 책을 대하소설로 내지 않은 이유는 ‘요즘 사람들’이다. 그는 “요즘 사람들이 어디 대하소설을 좋아하나?”라는 말로 ‘강남몽’의 한권 출간을 일축했다. 즉 이 책은 한권으로도 대하소설을 읽은 듯한 감흥을 주는, 그야말로 가성비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되 역사적 팩트가 담겨 있는 탓에 인문학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