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사진=KBS)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만 들여다 보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의 어둠에 잠심될 수도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 마음을 다치는 일도 적지 않을 터다. 이렇듯 숱한 고난과 부침에도 꿋꿋하게 세상의 범죄를 직시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아가는 이가 있다. 대한민국 강력 범죄 해결 및 예방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인물,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다.

그는 최근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2019년 100인의 여성’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BBC는 이수정 교수를 100인의 여성 중 한명으로 선정한 이유로 ‘법체계 개선 노력’을 꼽았다. 이와 함께 이수정 교수가 “범죄심리학자로서 미래가 내 아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한 발언을 소개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아가는 여성이라는 점을 어필했다.

1세대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인 이수정 교수는 범죄사건과 관련, 범죄의 동기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물론 대안을 찾는 것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인물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평생을 바친 범죄심리학은 범죄자를 올바로 이해하고 재범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더욱이 70년~80년대만 하더라도 빈곤으로 인한 범죄가 많이 일어났던 반면 요즘의 사회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회화 과정이 결핍된 이들의 강력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때문에 이수정 교수는 여전히 범행 동기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를 끊임없이 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원래 심리측정이 전공이었다는 이수정 교수는 심리검사 방법을 만드는 일을 주로 했다. 그러나 현재 몸담고 있는 경기대에서 일하게 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경기대에서의 첫 과제가 재소자 심사 절차를 만드는 것이었고, 위험한 범죄자와 일반 범죄자를 나누는 작업을 하다 범죄자 연구에 빠져들게 된 것이 지금의 이수정 교수를 만든 계기다. 특히 이수정 교수가 단순히 범죄 연구가의 면모만 보였더라면 지금과 같은 존경과 유명세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수정 교수가 해외에서도 인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국내에 대체자가 없는 범죄 전문가의 리더인 이유는 바로 범죄를 근절할 수 있는 법체계를 세우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일념이다.

사진=JTBC
(사진=JTBC)

이수정 교수는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본격적으로 범죄전문가가 된 이유를 설명한 바다. 여자라서 위험하다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과 더불어 현실에서 비켜간 듯한 범죄자들의 형량이 그를 심리학자에서 범죄전문가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그는 해당 매체와 인터뷰에서 처음 만난 범죄가 “전과 13범으로 강간, 강간미수, 강제추행 등을 벌인 성범죄자였다”면서 “미국이라면 감옥에서 결코 나오지 못하는 상황인데 신기했다. 더구나 형량이 2년 6개월밖에 안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가정폭력에 위협을 느껴 남편을 죽인 여자들은 8년 이상의 형량을 받았다는 현실에 많은 점을 느꼈다고. 이수정 교수는 전과 13범의 성범죄자를 만나려다 공무원이 아니며, 여성연구자가 성범죄자를 만나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연구목적의 만남을 거절당했고, 여자 재소자부터 만나기 시작하면서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에 13번 성범죄를 저지른 범인보다 높은 형량이 내려졌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이수정 교수는 심리학자로서 범죄에 대해 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밝힌 바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조건 엄벌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수정 교수는 소년법 개정 요구가 빗발치던 당시 국회의원들이 여론에 편승해 저마다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자는 강화법안을 내놓는 것을 두고 소년범의 경우 덜 성숙한 어린 학생이 교도소에서 더 나쁜 것을 배울 가능성이 높다면서 단순히 처벌 연령만 낮추는 것은 전시적 개정이라 지적했다. ‘악성이 감염되는 방식’을 견제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그는 절대기준을 둔 판사들과 시민들의 법 감정 차이를 좁히기 위한 방안으로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 소년범 처벌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다. 온전히 법만 준수하거나 범죄자의 인권에만 몰두하지 않는, 치우치지 않는 기준이 이수정 교수 안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수정 교수는 BBC ‘100인의 여성’에 선정된 후 ‘8회 아시아여성리더스포럼’에 나서 “범죄심리학 분야에서 연구를 시작한 지 20년이 됐다”면서 “20년 동안 내가 해온 일이 잘못된 방향이 아니라는 확신을 줬던 것이 가장 감사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해 오른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라는 진단을 받는 등 건강 이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는 또 한번 세상의 인정을 받으며 일을 더 해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밝혔다. 언뜻 보기에 범죄자를 만나 동기를 파헤치고 분석하는 일만 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그는 분명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는 이 시대의 리더다. 이수정 교수가 했던 말처럼 앞으로 바꿔나갈 세상이 좀 더 안전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본다.

사진=학지사, 중앙M&B
(사진=학지사, 중앙M&B)

■ ‘최신 범죄심리학’&‘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이수정 교수는 ‘최신 범죄심리학’을 통해 범죄자들과 그들이 저지른 범죄 내용을 이야기하다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듣는 사람의 정신도 피폐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고백한다. 따라서 그는 범죄내용이 적나라하게 보도되는 현 상황이 일반인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에 대해 고민하고 대중의 범죄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막는 방법을 무엇인지 등 제안을 이 책 안에 담았다. 이 책은 이 같은 현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범죄발생의 기제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몰이해에 기인한 무분별한 환호를 막을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학계에서 검증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범죄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막아 보고자 했고, 범죄의 심리학적 기제뿐 아니라 발생실태 및 형사정책적 대안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수정 교수와 경찰청 범죄분석요원 1기 출신 프로파일러 김경옥 박사가 함께 쓴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도 건강한 사회 도모를 위해 눈여겨 볼 만한 책이다. 이들은 사이코패스들의 범행동기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다. 두 사람은 지난 10년간 범죄자들을 직접 대면하고 조사한 실제 범죄자들의 심리를 구체적인 검사 자료와 관련 연구 자료 등을 토대로 세밀하게 분석해낸다. 특히 범죄자들과의 직접 면담 기록은 마치 그들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생생하다. 이해할 수 없는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범인에게도 범행 동기와 원인은 분명히 있다. 두 사람은 그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 그들의 일상과 심리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