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언 매큐언 공식 홈페이지 캡처
1976년부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는 이언 매큐언은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국내에도 그의 작품들이 여럿 번역 출간돼 오고 있지만 지난 1987년 휫브레드상을 수상한 ‘차일드 인 타임’이 동명의 영화 개봉 덕에 이제야 국내에 출간될 정도로 그의 작품세계는 다양하고 다채롭다.
1948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동시대 최고의 작가 중 하나로 꼽히며 수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섬뜩한 작가라는 뜻에서 ‘Ian Macabre’(섬뜩한 이언, 매큐언이란 이름과 비슷한 음절이기도 함)로도 불린 인물이기도 하다. 일상의 공포와 일탈과 혼란을 바닥까지 파고들어가며 펼쳐지는 그만의 색채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의 최근작들을 본 독자들과, 초기의 작품들부터 본 독자들은 독보적인 그의 문체에 매료되면서도 약간의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언 매큐언은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아주 다른 이야기를 펼쳤고 그 영역을 사회로 확대하기도 하고, 개인으로 좁혀 들어가기도 하며 점점 농도 깊고 성숙한 이야기들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급진적이라 불리던 작가가 현대 주류 문학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것도 이같은 변화와 다르지 않다.
■ 무게와 재미를 모두 잡는 영국 문학거장
영국 출생인 이언 매큐언은 노년의 삶을 런던에서 보내는 중이다. 그러나 유년기는 타국 생활이 길었다. 그의 아버지가 군 장교였던 탓에 그는 극동, 독일, 북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알려진다. 여러 나라를 경험하고 돌아온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1975년 첫 단편소설 모음집인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펴내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는다. 첫 단편집으로 서머싯 몸 상을 받은 그는 이후 셰익스피어상 등 영국의 유수의 상들을 휩쓸었고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라는 부커상 최종후보에 세 차례 오른 끝에 ‘암스테르담’으로 수상의 주인공이 된다. 대중과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작가로서 얻을 수 있는 영예를 모두 얻으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드라마, 아동극, 오페라 및 영화 대본 등을 쓰기도 하며 다양한 장르 속에서 활약한 그는 작품의 무게와 재미를 모두 놓치지 않으며 더욱 탄탄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평단을 쥐락펴락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인간의 악함과 공포의 자극으로 비춰졌다. 사회의 통념과 도덕을 비껴난 마구 비틀린 소재들이 등장하면서 보는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살인, 근친상간, 폭력, 소아성애 등 마구 등장하는 과감한 소재들에 더해 독자가 가해자의 심리와 행위에 동조하게 되는 짜임새로, 이른바 덫에 걸린 듯한 기묘한 체험을 하게 했다. 아동 성추행 에피소드를 다룬 첫 단편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과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지하실에 엄마를 묻은 뒤 남매의 감정이 바뀌어가는 ‘시멘트 가든’ 등 작품들이 그랬다. 이언 매큐언은 비도덕적 행위를 통해 도덕적 모순을 지적하고 인간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가다 보여주는 충격적 결말로 평단과 대중의 혼란을 야기했다.
사진=이언 매큐언 공식 홈페이지
이 가운데 휴가 중 살해당한 한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이방인의 위안’으로 그는 세간의 혼란을 종결시킨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지금까지의 충격적 소재와 기이한 전개가 단순히 자극을 위한 것이 아닌, 삶과 인간을 통찰력 있게 탐구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을 증명해낸다. 이후 작품들은 더 넓은 범위의 사회를 말하기도 하고 극단적 상황에 닥친 평범한 이들을 그려내면서 인간의 자아와 도덕성, 사회가 가진 무자비함과 무책임 등을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이언 매큐언은 남녀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관계, 전쟁이 남긴 상처와 뒤틀림 등 인간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들여다보고 모순을 짚어내며 강한 흡인력으로 독자들을 붙잡는다.
■ 인간에 대한 애정, 그 삶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연민
이언 매큐언의 작품세계에 대해 그가 변화하고 성숙해갔다고 표현했지만 어쩌면 그는 늘 그 자리에서 일관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의 삶에 대해 탐구해왔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세상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그의 작품 세계를 두고 논란거리로 보거나 당대 최고의 작품이라며 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볼 일이다. 인간의 허약하고 사악한 일면, 그로 인한 비극적인 운명들은 늘 그의 작품의 단골 주제였기 때문.
앞서 언급한 작품들을 비롯해 최신작들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 역시 그가 지금껏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인간과 사회의 본질적 문제와 다르지 않다. 기후변화라는 지구의 위기를 다룬 ‘솔라’에서 그는 탐욕스러운 물리학자로 관통하는 인간 본성과 사회적 문제를 풍자한다. 그런가 하면 태아가 어머니가 듣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세상일을 꿰뚫고 있다는 설정의 ‘넛셀’로도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직시한다. “태어나서 행동하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동시에, “영원히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무력감에 휩싸이는 태아의 갈등은 이언 매큐언이 줄곧 다뤄왔던 인간 본연의 번민과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이 나오자 뉴욕타임스는 “살아있는 작가 중 누가 이런 내러티브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군더더기 없이 탄탄하고 종종 무자비하게 눈부시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언 매큐언은 결점투성이의 인간과 결코 완벽할 수 없고 안전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해 말하며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인류에게 필요한 지혜와 이를 얻는 법’에 대해 말하기도 했는데 그의 답변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지금껏 그가 써왔던 작품들을 아우르는 통찰이 모두 담겨 있다.
“해답은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호기심과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지혜를 얻는 출발점 아닐까. 인간은 결점 투성이지만 사랑과 독창성이란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