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책읽는곰
사진=책읽는곰

백희나 작가는 그림책 작가다. 그러나 엄격한 심사를 통해 등단하고 평단의 시선을 받아내는 작가들에 비해 그의 작품이 결코 가볍다 말할 수 없다. 그의 그림책에는 아빠의 고단한 출근길이 고스란히 담기고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으며 무뚝뚝해보이는 어른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 백희나 작가를 두고 국내 그림책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한 인물이라 평하는 이들이 많다. 연말 연시 대작들이 넘쳐나는 가운데서 그의 그림책 ‘알사탕’을 기반으로 만든 뮤지컬 ‘알사탕’은 부모자녀 관람객층에 큰 사랑을 받고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백희나 작가는 작가지만 종합예술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그림책에 캐릭터의 얼굴부터 햇빛, 배경이 되는 세트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바로 글이다. 백희나 작가의 독보적 상상력은 그림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압축적이고 쉬운 글로 시작되고 귀결을 맺는다.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그림책이라고 말하기 때문일까. 그의 책, 그가 내놓는 작품마다 순수함은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더욱이 그는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으로 그림책을 만든다. 유명 외국작가라는데 도무지 뭘 말하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는 난해한 책도 아니고, 마구잡이로 팔기 위해 만든 주먹구구식 그림책도 아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요즘 신종어를 잔뜩 집어 넣어 그림책인지, 유해도서인지 모를 책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백희나 작가의 책은 어른에겐 순수한 세계로의 회귀를, 아이들에겐 신기하고 상상력 가득한 신나는 세상을 선사한다.

사진=백희나 공식홈페이지
사진=백희나 공식홈페이지

■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상상력을 발현하다

넘쳐나는 상상력은 어디서 나올까. 어쩌면 백희나 작가는 마법의 주머니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심심할 때 종종 들여다보고 이야기 주머니를 하나씩 끌어올리는 건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그의 그림책 속과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끝도 없는 상상의 세계가 공부하듯 쥐어짜 만든 것이라 고백한다. 백희나 작가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아이디어는 문득 떠오르지 않는다.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앉아서 공부하듯 쥐어짜면 그제야 아이디어가 나온다. 어렸을 적 언니들과 함께 그림 그리고 인형놀이 하는 것을 즐겼는데 그때 스토리를 많이 상상하곤 했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 때문일까. 그의 작품은 유독 온기가 있다. ‘그래, 아이들의 세계는 이런 거지’ ‘나도 이럴 때가 있었는데’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노력의 끝에서 얻은 아이디어는 백희나 작가가 고집하는 선하고 따뜻한 세계와 만나 다채로운 세상을 펼쳐낸다. ‘구름빵’에선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 아빠 고양이를 위해 구름 반죽으로 만든 빵을 먹은 남매가 하늘 위로 떠오른다. ‘삐약이 엄마’에서는 달걀을 먹고 노란 병아리를 낳은 심술보 고양이가 좋은 엄마가 되기로 결심하며 ‘달 샤베트’에서는 여름날 더위에 달이 녹아내린다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웃게 한다. ‘알사탕’은 또 어떤가. 아이는 알사탕을 먹고 주변 사물과 무뚝뚝했던 아빠, 하다못해 하늘나라로 간 할머니의 마음 속 진심을 듣게 된다. 이 작품을 두고 출판칼럼니스트 한미화 씨는 한겨레를 통해 “동동이가 아빠의 마음 속 소리를 듣는 대목에서 어른들이 소리없이 운다”고 평하기도 했다. 올 봄 나온 ‘나는 개다’를 통해서는 철들지 않은 강아지 구슬이를 통해 동물의 삶과 복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며 독자로부터 또 한번 호평받기도 했다. 더욱이 백희나 작가는 이같은 작품을 거쳐오면서 이상적 세계에 현실을 투영해 작품의 깊이를 더해간다. 단적인 예로 ‘구름빵’에서 그려진 4인 가족 이후 백희나 작가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작품에 반영하며 책이 고정시킨 이미지에 상처받는 이들이 없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머리와 심장으로 빚어낸 따뜻한 이야기의 온기를 배가시켜주는 것은 그의 손길이 닿은 소품과 배경들이다. 그는 찰흙으로 캐릭터를 빚어내고 실내외 배경과 소품까지 일일이 손으로 만든 입체감 넘치는 배경으로 그림책을 완성한다. 고유의 작업방식은 꾸준히 고수하지만 소재와 기법은 매번 새로워진다. ‘구름빵’에선 반 입체기법을 사용했고 ‘꿈에서 맛본 똥파리’는 투사지를 오려 만든 인물과 배경이 라이트 박스 위에서 생명력을 얻었다. ‘달샤베트’와 ‘장수탕 선녀님’에선 종이인형과 유토 인형이 이용됐고 ‘삐약이 엄마’는 연필과 목탄을 활용한 드로잉 기법이 사용됐다. 이렇듯 다채로운 표현 방식은 그가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학교(Cal Arts)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경험을 기반으로 매번 업그레이드되며 독자에게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KBS 'TV유치원'
사진=KBS 'TV유치원'

■ 저작권자 미보호의 피해자, 더 다채로운 세상을 열다

이같은 매력 덕에 백희나 작가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픽션부문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2005)로 선정되는가 하면 2013년 제3회 창원아동문학상과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 청소년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빛나는 작품세계와 작품 가치를 인정받은 세상 이면에는 아픔도 있다. 백희나 작가는 저작권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다. ‘구름빵’은 그가 원고료만 받고 모든 지적재산권을 출판사에 넘긴 가슴쓰린 작품이다. 수천억원을 벌어들인 출판사와 달리 그에겐 2000만원도 안되는 저작권료만 쥐어졌다. 그의 사례는 세간을 충격에 빠뜨렸고 저작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 제정으로 이어졌다. 그가 창작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앞장서게 된 이유기도 하다. 그는 분명 ‘구름빵’의 창작자이지만 큰 인기에 턱없이 모자란 수익금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 ‘구름빵’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서도 작품화하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백희나 작가가 이같은 아픔을 딛고 더욱 다채롭고 풍성한 작품활동을 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국내에서 그림책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바람도 어른들이 함께 보는 그림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백희나 작가는 ‘나는 개다’ 출간 당시 영풍문고와 인터뷰에서 “그림책은 유아 도서로 분류돼 있다. 그러다 보니 성인의 경우 아이가 없으면 그림책을 접할 기회도 거의 없다. 그림책은 아기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유아 서가로 와서 그림책을 펼쳐보라.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바람을 밝힌 바다.